㉠ 사건 당일까지의 그의 생활에서 자살의 특별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사건 당일까지도 기말고사를 대비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으며, 가출일인 18일에는 당일 오전 11시에 치러질 교련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원만한 교우 관계와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 사건의 발단이 자취방으로 18일 오전 10시경에 '서울대생'을 찾는 전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전화를 받고 실종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는 이 의문의 전화를 걸었던 사람의 정체(파악)에서 비롯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과를 발표하지 못앴다.
㉢ 시체가 발견된 부산 송도 앞바다는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이고 초행 일뿐더러 당시 소지했던 용돈(5,000원 내외)은 부산까지 도착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게된 경위도 밝혀지지 않았다.
㉣ 사체 인양 과정을 목격했던 백길영(바다횟집 '대구집' 주인)씨에 따르면 사건 현장은 지금까지 자살한 사람이 전혀 없을뿐더러 해안으로부터 10m가량 떨어진 수심이 17m나 되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장소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은 매립지를 끼고 있는 민간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높이 3m 정도의 방파제로 막혀있고 그로부터 바닷물까지는 5-7m 정도의 수초가 펼쳐져 있다. 따라서 무거운 시멘트덩이를 몸에 매단 채 사망 추정 시간인 밤 11시에서 익일 오전 2시 사이에 위와 같은 현장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 사체 인양자인 스쿠버 다이버 최영봉(31세)씨에 따르면 사체는 수초가 끝나는 12m 정도의 바다 속에서 1미터 정도 뜬채로 발견되었고 안경이 깨어져 있었고, 상하의와 신발도 입혀진 채였으며, 신체 상태 또한 전혀 외상이 없었고 사체는 시멘트 덩이에 매달린 채로 마치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깊게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살자들이 일반적으로 최후의 순간에 직면하는 고통의 몸부림을 설명할 수 없다.
㉥ 사체부검시 참관자인 부산일보 장병호 기자에 따르면 외상은 전혀 없었으나 두피절개 결과 두피하출혈 20cc의 상처 - 세로 5센티미터, 가로 상부 3센티미터, 가로하부 1센티미터의 일직선 쐐기모양 - 가 발견되었고 이것은 단순한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교한 타격에 으히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단순한 익사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원인에 인한 죽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 사체 부검이 유가족 부재시에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원칙상 보호자 입회하에 부검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검은 보호자가 현지에 도착하기 전인 6월 23일 하오에 이미 실시되었고 이것은 그 자체의 이례성과 더불어 사인에 대한 또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